도서관에서 조별과제를 준비하는 학생들

조별과제에서 역할을 나누는 자리는 대개 짧게 끝납니다. 조장, 자료조사, 발표자료, 발표까지 이름을 붙이고 나면 정리된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제출 사흘 전에 드러납니다. 자료조사를 맡은 사람은 링크를 열 개 모아 올렸는데, 발표자료를 맡은 사람은 그것으로 장표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 다 자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그 어긋남을 줄이려고 쓰는 문서 한 장과, 그 문서를 만든 다음에 추첨을 돌리는 순서를 다룹니다.

조별과제가 틀어지는 지점은 역할이 아니라 정의다

자료조사는 일의 이름이 아니라 분야의 이름입니다. 어디까지 모으면 끝인지, 어떤 형태로 넘기는지, 언제까지인지가 빠져 있습니다. 같은 단어를 두고 한 사람은 자료 수집을 떠올리고 다른 사람은 요약 정리를 떠올립니다. 두 해석이 부딪히는 시점은 늘 마감 직전입니다.

이 상태에서 역할을 무작위로 뽑으면 문제가 하나 더 붙습니다. 정의되지 않은 일을 맡은 사람은 자기 몫을 스스로 좁게 잡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앞뒤 공정을 받는 사람은 그 몫을 넓게 기대합니다. 뽑기가 불공평해서가 아니라, 뽑기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아서 생기는 간극입니다.

무작위 배정이 공정하게 느껴지는 조건도 여기서 나옵니다. 뽑히는 항목들의 부담이 서로 비슷해야 합니다. 발표자료 담당이 다른 역할의 두 배를 일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자리를 무작위로 정하면, 뽑기는 공정한 절차가 아니라 부담을 떠넘기는 절차로 읽힙니다. 정의서를 먼저 쓰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불균형을 뽑기 전에 눈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칸을 채우다 보면 어느 역할이 무거운지 드러나고, 그때 분량을 옮기면 됩니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야 합니다. 역할을 정하기 전에 역할의 내용을 먼저 적습니다. 적는 데 걸리는 시간은 첫 회의에서 십 분 남짓이고, 이 십 분이 마감 주간의 언쟁 대부분을 없앱니다.

역할 정의서 만들기

정의서는 네 칸이면 충분합니다. 역할 이름, 그 역할이 남기는 산출물, 마감, 그리고 무엇을 보면 끝났다고 판단할지입니다. 마지막 칸이 핵심입니다. 완료 판단 기준이 없으면 모든 역할은 각자의 기준으로 끝납니다.

네 명 기준 역할 정의서 예시
역할산출물마감완료 판단 기준
조장회의 일정표, 회의록, 제출 파일 최종본 관리첫 회의 다음 날, 이후 회의마다조원 전원이 이번 주 자기 할 일을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자료조사출처가 붙은 요약 문서. 항목마다 세 줄 이상 정리2주차 마지막 날발표자료 담당이 추가 검색 없이 첫 장을 만들 수 있다
발표자료목차, 초안 장표 전체, 최종본 파일3주차 마지막 날발표자가 장표만 보고 순서를 설명할 수 있다
발표발표 대본, 예상 질문과 답변 목록발표 이틀 전정해진 발표 시간 안에 리허설이 끝난다

표의 내용은 과제마다 달라집니다. 다만 산출물 칸에는 반드시 파일이나 문서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적습니다. 검토, 지원, 보조 같은 말은 산출물이 아닙니다. 그런 칸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역할은 나중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역할로 기억됩니다.

정의서는 회의록과 같은 문서에 두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회의록은 회의를 할수록 길어지고, 길어진 문서의 아래쪽은 아무도 다시 읽지 않습니다. 공유 문서의 첫 쪽에 표 하나만 두고 바뀔 때마다 그 표를 고치세요. 바꾼 날짜를 표 아래에 한 줄로 남겨 두면 누가 언제 범위를 조정했는지가 기록으로 남습니다.

정의서를 쓴 다음에 추첨하는 순서

  1. 첫 회의에서 정의서 초안을 다 같이 채웁니다. 빈칸이 남아 있으면 추첨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빈칸은 나중에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 혼자 떠안게 됩니다.
  2. 조장을 먼저 정합니다. 지원자가 있으면 그대로 확정하고, 없으면 조장 자리만 따로 제비뽑기로 뽑습니다. 조장은 산출물보다 일정 관리 성격이 강해서 다른 역할과 한 판에 섞으면 부담의 크기가 서로 비교되지 않습니다.
  3. 조장이 정해지면 정의서의 조장 행을 확정하고, 남은 역할만 한 번 더 돌립니다. 사람과 역할을 한 화면에서 선으로 이어 보여 주고 싶다면 사다리타기가 편합니다. 결과 화면을 캡처해 두면 나중에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4. 결과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정의서에 이름을 적어 넣습니다. 종이에 적든 공유 문서에 적든, 회의가 끝나기 전에 이름과 마감이 한 줄로 붙어 있어야 합니다.
  5. 단체 대화방에 정의서 요약과 결과를 함께 올립니다. 결과만 올리면 일주일 뒤에 범위 논쟁이 다시 시작됩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올리는 공지는 아래 정도면 됩니다.

[역할 확정] 주제: (확정된 주제를 한 줄로) 조장 ○○ / 자료조사 ○○ / 발표자료 ○○ / 발표 ○○ 각 역할의 산출물과 마감, 완료 기준은 공유 문서 1쪽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범위를 조정해야 하면 다음 회의 전까지 말해 주세요. 그 뒤에는 문서 기준으로 진행합니다.

결과를 바꾸고 싶다는 말이 나오면 다시 돌리지 말고 교환으로 처리하세요. 두 사람이 서로 역할을 맞바꾸는 데 동의하면 표에서 이름 두 개만 바꿔 적으면 끝입니다. 반대로 한 번 다시 돌리기 시작하면,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반복하자는 요구를 막을 근거가 없어집니다. 교환은 당사자끼리 정하고, 다시 돌리는 것은 명단에 오류가 확인된 경우로만 한정합니다.

인원이 달라지면 바뀌는 것

3~4명
역할을 한 사람에 하나씩 붙이면 발표자료 담당에게 일이 몰립니다. 장표 제작은 분량이 눈에 보이는 만큼 시간이 많이 듭니다. 이 규모에서는 발표자료를 두 사람이 장을 나눠 맡고, 조장이 자료조사를 겸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추첨할 항목이 두세 개로 줄어 제비 한 번이면 끝납니다.
5~6명
앞의 네 역할이 그대로 들어맞는 규모입니다. 남는 인원에게 새 역할 이름을 만들어 붙이지 말고 기존 역할의 분량을 쪼개세요. 자료조사를 주제별로 둘로 나누고, 각자 담당 범위를 정의서에 한 줄씩 더 적으면 됩니다. 없던 역할을 만들면 산출물 칸을 채울 수 없습니다.
7명 이상
한 명씩 배정하면 회의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이 생깁니다. 두세 명 단위 소조로 먼저 나누고 소조마다 산출물을 하나씩 맡기는 편이 낫습니다. 인원을 고르게 가르는 데는 팀원뽑기가 편합니다. 소조 안에서 누가 무엇을 할지는 추첨하지 말고 소조끼리 정하게 두세요. 서로 얼굴을 아는 두세 명 사이에서는 대화가 추첨보다 빠릅니다.

4주 과제 타임라인

정의서를 썼어도 확인 시점이 없으면 마감 주에 몰립니다. 주마다 무엇을 보고 진행 상황을 판단할지 미리 정해 두세요.

4주 과제의 주차별 진행과 확인 방법
주차해야 할 일확인 방법
1주차주제 확정, 역할 정의서 작성, 조장 선정 후 나머지 역할 추첨정의서에 빈칸이 없고 모든 행에 이름이 적혀 있는지 본다
2주차자료조사 산출물 제출, 목차 확정발표자료 담당이 자료만 보고 첫 장을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본다
3주차발표자료 초안 완성, 내용 검토 회의발표자가 초안만 보고 순서를 설명할 수 있는지 시켜 본다
4주차대본 작성, 리허설, 최종본 제출정해진 시간 안에 리허설이 끝나는지 재 본다

확인 방법 칸을 질문이나 동작으로 적은 이유가 있습니다. 진행률을 숫자로 물으면 대부분 잘되고 있다고 답합니다. 실제로 만들어 보게 하면 막힌 지점이 그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일정이 밀렸을 때 어느 쪽으로 조정할지도 미리 정해 두세요. 마감을 뒤로 미루는 것보다 범위를 줄이는 편이 안전합니다. 마감을 미루면 다음 주 일정까지 연쇄로 밀리지만, 범위를 줄이면 그 주 안에서 끝납니다. 무엇을 줄일지는 조장이 혼자 정하지 말고 회의에서 한 번 확인하고 정의서에 반영합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역할을 다루는 두 가지 방법

대개 발표가 그 자리입니다. 준비 시간에 비해 부담이 크고, 실패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보상형은 그 역할을 맡는 사람의 다른 부담을 덜어 주는 방식입니다. 발표를 맡으면 자료조사에서 빼 주거나, 회의록 작성 순번에서 제외합니다. 한 사람이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 성격의 일에 적합합니다.

분할형은 역할 자체를 쪼개는 방식입니다. 발표를 도입, 본론, 마무리로 나눠 세 사람이 한 대목씩 맡습니다. 각자의 부담이 줄고, 한 사람이 당일에 아프더라도 나머지가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쪼개도 흐름이 끊기지 않는 일에 적합합니다.

둘 중 무엇을 고를지는 역할의 성질이 정합니다. 나눠도 결과물이 하나로 읽히면 분할형, 나누는 순간 앞뒤가 어긋나면 보상형입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성적이나 기여도 점수를 거래 대상으로 삼는 합의는 하지 않습니다. 평가는 조원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합의해도 평가하는 쪽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부담 조정은 작업량 안에서만 합니다.

목록에 이름이 없는 일도 있습니다. 회의 장소를 잡고, 파일 이름을 통일하고, 제출 직전에 양식을 맞추는 작업입니다. 이런 일은 정의서에 적히지 않아서 대개 조장에게 남습니다. 조장의 산출물 칸에 아예 적어 두거나 제출 담당을 따로 두어 나누는 편이 낫습니다. 적히지 않은 일은 한 사람이 조용히 떠맡게 되고, 그 사람은 마지막 주에 가장 지쳐 있습니다.

추첨으로 넘기면 안 되는 항목

추첨은 부담이 비슷한 항목들 사이에서만 공정하게 느껴집니다. 아래 항목은 성격이 달라서 무작위로 넘기면 결과가 곧 불만이 됩니다.

  • 성적 배분과 기여도 점수. 평가 기준은 과목을 맡은 쪽이 정합니다. 조 안에서 나눠 갖기로 정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닙니다. 기여도 문항이 있는 과제라면 정의서의 산출물 기록을 근거로 쓰는 편이 낫습니다.
  • 개인 사정이 걸린 발표. 발표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고, 그 이유를 공개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발표만 지원자로 먼저 채우고 나머지를 추첨하는 순서를 두면, 아무도 사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자리가 정리됩니다.
  • 참여하지 않는 조원의 처리. 이것은 조 안에서 규칙으로 정할 문제가 아니라 과목 담당자에게 확인할 문제입니다. 연락 시도와 산출물 기록을 남겨 두고 정해진 절차를 따르세요.
  • 마감일 자체. 제출 기한은 협상 대상이 아닙니다. 내부 마감은 항상 실제 기한보다 앞에 둡니다.

같은 교실이라도 매주 초기화되는 당번이나 모둠은 조건이 다릅니다. 과제는 산출물이 남아서 정의서가 힘을 갖지만, 당번은 남는 기록이 없어 순환 규칙이 더 중요합니다. 그 차이를 다룬 글이 교실 당번과 모둠 정하기입니다. 역할 수와 인원이 맞지 않아 어떤 방식으로 뽑을지부터 막힌다면, 항목의 성격에 따라 도구를 고르는 기준을 정리한 추첨 도구 고르는 법을 먼저 보세요.